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르투갈 왕국 (문단 편집) === [[이베리아 연합]] === 1580년 안토니우를 몰아내고 포르투갈의 국왕을 겸임한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약속대로 포르투갈 귀족들에게 포르투갈의 행정을 맡기고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다. 다만 국방, 외교 등 중요한 문제는 마드리드에서 판단한 뒤 포르투갈에 통보하기로 했다. 이후 스페인 당국은 포르투갈을 완전히 흡수하기 위해 포르투갈 대귀족들을 잘 대접하면서 그들을 스페인 왕실 및 명문 귀족들과 혼인 관계를 맺게 해 스페인에 동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했다. 브라간사 6대 공작 주앙 1세는 펠리페 2세로부터 황금 양털 목걸이를 수여받고 영지 내에 치안판사를 임의로 선임하고 여행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등 갖가지 특혜를 받았으며, 아들들 역시 여러 요직과 특권을 부여받고 스페인의 여성 귀족들과 결혼헀다. 포르투갈 대귀족들은 펠리페 2세 시절엔 무제한적인 자치를 향유하며 스페인의 막강한 군사력을 배경삼아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등극한 [[펠리페 3세]]와 [[펠리페 4세]]가 포르투갈 귀족들의 특권을 하나둘씩 회수하며 스페인 당국의 통제하에 두려 하자, 귀족들은 차츰 불만을 품었다. 특히 펠리페 4세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은 올리바레스 백작 [[가스파르 데 구스만]]이 카스티야 뿐만 아니라 아라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스페인이 다스리는 다른 영토에서도 직접세를 거두고 스페인 법률을 그대로 적용하는 정책을 실시하면서, 이러한 불만은 고조되었다. 여기에 1609년부터 재개된 [[네덜란드 독립 전쟁]]으로 인해 포르투갈 상선이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해군에 나포되고 포르투갈이 식민지배하고 있던 [[브라질]], [[앙골라]], [[상투메]] 등지가 공격당하는데도 스페인 당국이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자, 식민지 경영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던 상인 계급 역시 불만을 품었다. 게다가 네덜란드와의 전쟁에 이어 [[30년 전쟁]]까지 뛰어든 스페인이 모자라는 병력을 충당하기 위해 포르투갈 장정들을 강제로 끌고 가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자, 스페인을 위해 희생당하고 싶지 않은 민중들의 독립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졌다. 1634년 사보이아의 마르게리타[* 1589 ~ 1656, 사보이아 공작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와 스페인의 [[카탈리나 미카엘라]]의 딸.]가 포르투갈의 여성 [[부왕#s-2]]으로 부임하고 포르투갈 출신이며 올리베리아 백작의 시종인 미겔 드 바스콘셀루스가 국무 장관으로 부임한뒤 올리베리아 백작의 지시에 따라 포르투갈 교회 자산을 조사한 뒤 일부를 몰수하기 시작하자, 스페인의 지배에 별다른 불만이 없던 성직자들까지 반발했다. 특히 오래 전부터 [[압스부르고 왕조]]와 마찰을 벌였던 [[예수회]] 수도사들은 민중을 선동해 스페인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켰다. 1637년 8월, 경제 위기와 가뭄으로 곤경에 처한 포르투갈 민중들은 포도주와 육류에 대한 새로운 세금이 부과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에보라에서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다. 폭동은 순식간에 남부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예수회 수도사들은 반란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포르투갈 대귀족들 역시 자기 영지를 지키는 데 급급할 뿐 반란 진압에 지극히 소극적이었다. 이에 펠리페 4세는 토벌대를 파견해 폭동을 진압한 뒤 1638년 주앙을 비롯한 대다수 귀족들을 마드리드로 소환해 그들의 수동성을 질타했다. 이후 포르투갈의 통치 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코르테스가 마드리드에서 소집되었다. 그 결과 포르투갈 평의회는 미겔 드 바스콘셀루스 등 올리베리아 백작에게 충실한 포르투갈 비서들이 지배하는 리스본과 마드리드의 2개 위원회로 대체되었고, 카스티야인들이 포르투갈 정계에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스페인 당국의 간섭이 갈수록 강화되면서 자치권을 온전히 누리기 어려워지고, 영국과 네덜란드의 연이은 습격으로 인해 식민지 경영이 어려워지고, 민심이 갈수록 흉흉해져 자칫했다간 스페인의 앞잡이로 간주되어 처단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감돌자, 포르투갈 대귀족들은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로 마음먹고, 제8대 브라간사 공작 주앙을 포르투갈 국왕으로 추대하기로 결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